독서 이야기

기억 너머의 사랑, 지속될 수 있을까?<서평> 사랑의 무력함과 위대함, 그리고 진짜 사랑을 보여준, 책 <먼지처럼 흩날리는 별>

쩡킴의 사는 이야기 2025. 5. 13. 18:26

'역행성 기억상실증'은 뇌질환이나 외상이 있기 전의 일들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는 기억상실증을 말한다.

<먼지처럼 흩날리는 별> 이세벽 글 / 이아이 출판

 

책<먼지처럼 흩날리는 별> (2025년 3월 출간)은 역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천강(아내)과 그녀를 사랑하는 월인(남편)의 이야기다. 기억 너머의 사랑의 끝은 무얼까. 조바심에 400페이지가 넘는 꽤 두꺼운 소설임에도 단숨에 읽었다.

'사랑'에 대한 탐구는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때문에 문학을 비롯 예술작품 전체를 아울러 늘 사랑은 작품의 주제가 된다. 사랑은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먼지처럼 흩날리는 별>에서 작가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 '우리는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잿더미 속에 감추어진 기억의 불씨를 찾아내어 되살려 주기만 한다면 굶주린 천강의 기억이 불의 혀처럼 일어날지 모르는 일인데....
도대체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부지깽이는 무엇일까. 어쩌면 나자신이 부지깽이가 아닐까. 그런데 어떻게 잿더미가 되어버린 천강의 기억 속으로 파고들지.

역행성 기억 상실증을 앓고 있는 아내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남편의 가슴 저린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책을 읽으며 문득문득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기억을 잃은 사랑'의 지속성에 대해 반신반의하며 읽었다. 천강과 월인이라는 이름은 서로의 애칭이다. 사이좋기로 소문난 부부는 순간의 사고로 천강<아내>은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그녀를 지켜주는 월인<남편>.



하지만 천강은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을 타인으로 대하고, 월인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랑하는 아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 앞에 놓인 현실이다.



천강이 자신의 남편인 월인을 타인으로 대하며 반발하는 대목에서 사랑의 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과거의 기억인 부부로 살아온 세월이 두 사람에게 사랑의 끈으로 유지되지 않는 걸까. 아니면 기억의 너머에 또 다른 사랑이 그들에게 비집고 들어올 자리는 있는 것일까. 작가는 앞으로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갈까. 여러 가지 질문들을 하며 나도 그녀가 되어 그녀의 혼란 속으로 들어가 공감도 해본다. 그 과정에서 부부간의 사랑의 끈은 강할까. 아니면 썩은 동아줄처럼 어느 순간 툭하고 끊길까.라는 질문들을 하며 읽게 된다.

월인은 '천강의 몸 어딘가에는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 이라는 희망으로 애닮은 하루를 살아낸다. 아내를 돌보고, 설득하는 월인을 보며 사랑의 위대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월인의 위대한 사랑을 인정하면서도 그사랑이 현실의 모든것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현실적으로 월인의 사랑이 천강의 기억과 감정을 움직이기는 어렵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인의 행동에서 '진정한 사랑' 이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천강이 자신을 타인으로 취급하며 적대감으로 대할 때도, 현실 앞의 천강을 인정하고 받아주는 행동들에서 월인의 사랑은 '기다림과 헌신, 인내' 가 바탕이 된 인간 내면에서 오는 심오한 사랑이라는 걸 배우게 되었다.

 

천강씨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요? 월인은 해주에게 눈짓하고 짐짓 태연한 얼굴로 천강에게 묻는다.
천강은 수줍은 듯 고개를 끄덕인다. 월인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해주를 보고 다시 눈을 징긋한다. 모든게 농담같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무력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제자리로 돌라갈 수나 있는 것인지.
만약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아니 어떻게 되는 건지.


천강의 현실 세계에 찾아온 그녀의 새로운 사랑을 인정해 주는 월인의 사랑은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선택인 사랑'이다. 자신의 아내를 위해 스스로 이혼을 결정하고, 그녀의 결혼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이 남자의 행동은 어쩌면 남편의 모습이 아니라 아버지 모습 같기도 했다. 이런 월인의 결정과 행동은 사랑은 소유가 아닌 해방인 동시에, 자신의 행복보다 상대의 행복을 간절히 바라는 대서 오는 인간애다.



하지만, 행복한 천강의 인생을 펼쳐준 월인은 죽음을 선택해 자신만의 숭고한 사랑으로 결론짓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월인의 상실감이 사랑의 철학적 고민을 하게 만든다. '기억과 사랑' 이 둘의 관계는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이다. 기억을 잃은 천강의 상황에 공감하고, 그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하고 인내한 세월 앞에서 무력해지는 월인의 사랑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저 멀리 높은 하늘엔 별이 먼지처럼 흩날리고 침묵이 지상을 겹겹이 에워싼다.
아니,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우는 풀벌레 소리도 고독을 헤집는 천진난만한 발 아래 소요다.
사랑은, 사랑은 늘 목이 멘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죽음을 시도했던 월인은 불구의 몸이 된다. 기억을 되찾은 천강과 월인의 만남은 안타까웠지만 숭고하게 다가왔다. 사랑은 부부로 함께 한 시간을 뛰어넘은 서로를 영원히 기억하고 이해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부부의 사랑은 반드시 상대와 쌍방통행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사랑 그자체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사랑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하게한다.



천강과 월인의 사랑은 단순한 사랑의 의미를 넘어 기억 너머의 둘의 관계에서 다시 새롭게 정립된 사랑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보여 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