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이야기

삶의 스펙트럼을 넓히면 ' 다른 삶' 을 살 수 있다.곽미성의 <다른 삶>

쩡킴의 사는 이야기 2025. 6. 12. 15:33

사람마다 삶의 모양은 조금씩 다르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우리의 삶도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선택의 여지없이 한국을 떠나 독일로 간 어느 주재원 아빠의 말이 생각난다. '말이 안 통하면 불편한 게 아니라 존재 자체가 작아지는 느낌이다' 그만큼 이방인의 삶은 우리가 꿈꾸는 부러운 삶은 아닌가 보다. 남들의 삶이 내 눈에 부러움으로 보일 때, 그들은 그만큼의 대가를 치렀을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매 순간마다 선택을 해야 하고 그렇게 맞닥뜨린 인생의 변곡점에서 또 하나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자의든 타의든 새로움은 늘 떨림과 용기라는 간극이 있다. 지금 다른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책 곽미성의 <다른 삶>이다.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어떤 이는 기꺼이 이방인이 된다'라는 소제목과 강렬한 느낌의 주황색 표지, 그리고 녹색의 화려한 의자가 마치 타국에서 다른 삶을 사는 이에게 편안한 휴식을 주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저자는 10대 후반에 떠난 어학연수를 시작으로 20년 넘게 프랑스에 머물고 있다. 파리 1 대학과 7 대학에서 영화학을 공부했고, 영화 작업, 그리고 우리나라 파리지사를 거쳐 지금은 우리나라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책 속에는 어린 나이에 현지에서 공부하고, 정착하게 된 과정을 아주 섬세하게 이야기한다. 지금 한국에 많이 들어와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들이 느끼는 감정도 비슷할까. 생각도 하면서 읽었다.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떠나기 전날 밤에는 늘 후회한다. 다음 날 집을 나서서 시간 맟춰 공항에 도착하고, 무사히 비행기를 타고, 새로운 지역에 도착해 숙소에 가는 일까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다 보면, 만사가 피곤해진다.

'뭐 하러 떠나려고 했을까, 집에 있으면 이렇게 편한데.'

<서문 중>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설렘이 되고 현실에서는 후회가 되기도 한다는 작가의 심정이 와닿는다. 누구라도 공감할 심정 다음엔 어떤 이는 행동하지 않았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행동했다. 어쩌면 지금 모국을 떠나 다른 삶을 준비할 누군가 알고 싶어 하는 새로운 삶에 대한 내용이 다 들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난 저자처럼 이방인으로 산 적이 없지만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독립적으로 개인의 삶을 산다는 의미다. 나는 개인의 삶들이 다양해질수록 세상이 섬세해지고, 우리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스펙트럼도 넓어진다고 믿는다.

 

새로운 언어 속으로 과감히 들어간 저자가 겪었어야 할 많은 상황들. 그 섬세한 경험들에서 그의 자아는 더 확고하게 되었고, 프랑스어 실력은 조금씩 발전해 소통의 부재를 걷어 버리며 그들 안으로 들어갔다. 이방인으로서 현실은 생존과 직결되었고, 언어의 확장이 그를 견디게 해 준 버팀목이었다고 한다. 마치 샐러드 볼에서 여러 가지 채소들이 어울려 새로운 맛을 내듯 이방인으로서 겪는 차별을 조금씩 이겨냈다고 한다. 하루하루 버텨낸 시간들은 그가 선택한 삶에서 넓힌 언어와 문화의 스펙트럼 일 것이다.

​ 아시아인이라서, 외국인이라서 무시당했던, 억울한 일투성이던 시절이지만, 그런 설움 같은 건 다 잊었을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마음속 깊은 곳에부터의 해방감이 그리운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항공사 기내식 비빔밥에 대한 저자의 경험은 한국인이라면 공감할 내용이다. 앞. 뒤 공정하게 배분하는 것을 이해 못 하는 프랑스 승무원의 태도는 저자가 아시아인<한국인>이기 때문이라는 자격지심으로 이어졌다. 파리에서의 집 매매 이야기도 흥미로왔다. 우리나라와는 너무 다른 부동산 거래 방식엔 우리도 저렇게 해야 되지 않을까. 많은 돈이 들어가는 부동산 구매는 그만큼 복잡한 절차가 수반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어렵게 구매한 집. 햇살 가득한 거실에서 매일 아침 만나는 에펠탑과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만큼이나 삶의 스펙트럼은 넓어졌고 해방감을 경험한다.

​ 나는 지구상의 많은 땅을 밟아보고, 가능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가능한 많은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삶을 동경하지만, 한정된 시간의 인생에서 원하는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음을 또한 알고 있다.


'꿈은 꿈일 뿐이다'라는 말. 얼마나 나약한 말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꿈꾸는 삶을 이루지 못한다. 나 또한 그렇다. 현실의 상황 때문에. 용기가 없어서. 꿈을 이룰 만한 형편이 안 돼서. 등 수많은 안 되는 이유들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나와 다르게 어렵게 얻은 영화인의 삶을 접고 또 다른 삶을 실천하고 있다. 자신의 능력과 용기 그리고 행동하는 실천력으로 한 번뿐인 인생에서 새로운 삶을 시도한다. 이런 삶의 자세야말로 배워야 한다. 나는 책을 읽으며 생생하게 풀어낸 저자의 다른 삶에 나도 함께하며 또 다른 삶을 살아본 간접 경험을 한 기분이다.

​ 우리의 삶은 보편성은 그만큼 쉽게 상실되고 우리 중 누구라도 소수자가 될 수 있다고. 그러니 스스로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는 보편성이라는 말이 의미가 없게 된다.


저자처럼 모국을 떠나 이방인으로서 프랑스 남편과 다른 삶을 살고, 성소수자들의 삶, 가족을 만들지 않고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 이 모든 다양한 삶들은 다수에 의해 형성된 삶과 다른 삶이라고 한다. 저자는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을 겪으며 '다름의 연대'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타인의 다른 삶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나의 다른 삶이 가치 있기 때문이라고.

'다른 삶'을 선택하는 것은 연령이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용기. 남과 다른 삶을 사는 자세에 대해 새롭게 알았다. 내게 주어진 환경을 뛰어넘어 '다른 삶'을 꿈꾸게 한다. 지금 다른 삶을 시작할 많은 사람들이 받을 짜릿한 자극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