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이야기

러시아를 더 알고 싶게 만드는 책

쩡킴의 사는 이야기 2025. 5. 2. 15:34

<비정상회담> 벨라 코프 일리야가 쓴 책 <러시아의 문장들>을 읽고

문학은 독자에게 교훈을 주고 인생의 진실을 보여주어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다양한 인간 활동 중의 하나로 작가는 현실 세계를 바탕으로 있음직한 사건들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문학을 읽으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만남으로써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하며 자신의 삶을 성장시킨다.

<러시아의 문장들> 한 줄의 문장에서 러시아를 읽다. 벨라 코프 일리야 /틈새책방

 


책 <러시아의 문장들>은 <비정상회담> 러시아 패널 출신 벨라 코프 일리야가 쓴 책이다. 19세기부터 현대까지,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러시아 작가들을 소개하며 문학과 문화·생활까지 한국과 비교하며 자신만의 관점으로 쓴 책이다.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이후 두 번째 읽은 이번 책도 러시아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읽혔다.저자는 고등학생 때 읽은 러시아 문학이 어려웠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저자가 말하는 '어렵다'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안톤 체호프의 작품 등 많은 러시아 문학들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혼과 심리'를 다룬다.

러시아 문화가 철학적인 면보다 인간의 감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10대의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말이라 생각되었다. 어른이 되고 같은 작품을 다시 읽었을 때 그 깊이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어렵다'에 나도 공감한다. 책을 읽으며 내가 읽었던 러시아 문학이 새롭게 와닿았다. 톨스토이(1828~1910)의 '안나 카레리나' 첫 문장의 심오함이다.

​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다

독자들이 당시 러시아의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읽는다면 소설의 방향은 제각각으로 흘러갈 것이다. 저자는 이 문장에 대해 지체 높은 귀부인 안나 카레리나가 젊은 브론 스키와 사랑에 빠져 비극적 운명을 맞게 되는 것을 설명해 준다. 1870년대는 제정 러시아에 봉건주의가 뿌리 깊었고 사회주의가 만연했기 때문에 '개인은 사회를 이길 수 없다'는 의도를 담았다고 한다. 보수적 가치를 지향하던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변화의 바람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지 나타냈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안나 카레니나'가 19세기 취약한 여성권에 대한도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의 심장을 동사로 불질러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를 쓴 '알렉산드로 푸시킨'의 유명한 문장이다. 러시아에서는 문학 작품이 단순히 쓰이는 것이 아니라 심오한 의미를 담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고 한다. 글은 사람을 사유하게 하고, 자극하며, 마음속에서 열정이 일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나 삶의 목표 그리고 인간 정체성의 갈등, 세상 이치나 원리 등을 담은 것이 러시아 문학의 본질이다. 즉, 말로 생각하게 만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동화는 거짓이지만 숨은 뜻이 있다.

선량한 젊은이들에게 교훈을 준다.

- <황금 수탉 동화>

푸시 킨은 러시아 문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누구나 문학에 쉽게 접근하도록 문어체를 사용하지 않았다. 고전문학이나 영웅 서사시가 아닌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이야기를 썼다. '운문 소설'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창조해 소설뿐만 아니라 동화까지 쓴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19세기 초 러시아는 러시아 정체성 논쟁의 장이었다. 서구주의 vs 슬라브주의의 논쟁은 러시아판 보수 vs 진보의 갈등이다. 슬라브주의는 '모스크바는 세 번째 로마'(로마/ 콘스탄티노플/ 모스크바)이며, 러시아는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의 후예로 러시아의 민족성. 종교. 문화가 유일무이하다는 입장이다. 대표적인 작가가 톨스토이다. 반면 서구주의는 러시아는 유럽 문화권과 종교(러시아 정교회)를 중시하는 입장이다. 대표적 작가로는 푸시 킨과 차다 예프다.

유럽으로 창문을 뚫다.

- <청동 가마상> 푸시킨

 

표트르 대제 (17세기 후~ 18세기 초)는 러시아 최고 지도자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했다. 문화수도로 암스테르담 양식을 표방했다. 때문에 유럽 문화를 수용하여 문화를 발전시켰다는 의미에서 '유럽으로 창을 뚫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현재 러시아는 유럽일까. 아시아일까. 작가는 한국에서는 유럽으로, 유럽에서는 아시아로 보지만, 러시아에서는 러시아로 본다고 한다. 1917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공산주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러시아의 유일무이함을 강조한다고 한다.

그러나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서방에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정체성 혼란의 시기였다고 한다. 2000년대 러시아 경제가 안정화되며 푸틴 정권은 '유일무이한 러시아'를 도입했다고 한다. 2010년에는 '러시아 세계(루이스 미르)'를 발표해 본격적으로 러시아 정체성을 국경 밖까지 확장하고 있다고.

빨리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러시아 사람이 아니지!

니콜라이 고골<죽은 혼>

 

니콜라이 고골은 사회 불평등과 부조리를 비판했다. 러시아의 관심사는 '교통'이라고 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세계 최장 철도다. 러시아인은 여행지의 교통수단의 속력, 제작연도, 주최 등을 알려주면 좋아한다고 한다. '빠른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문화'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러시아인에겐 자동차 등 물리적 속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일상과 사회 속도는 한국인의 빠름과는 거리가 먼 매우 느리단다.

러시아인에게는 불구대천의 위험한 적이 있다. 그 적은 바로 나태다.

- 니콜라이 고골 <로마>

서유럽 기독교 문화에서는 '나태'를 7가지 대죄 중 하나로 여기지만, 러시아에서는 부정적으로 보거나 비판하지 않는다고 작가는 말한다. 러시아 국민 동화인 <난로에 누워 있는 데 멜라>에서도 '인생에서 노력보다 운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러시아에서는 '나태'는 신의 뜻을 따르는 행동으로 죄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틈만 나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한단다.

이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들뿐만 아니라 낯선 러시아 문학인들의 글 속 한 문장들을 소개하고 있다. 문장에 담긴 상황들과 관련된 러시아 문화, 역사, 그들의 사고방식과 일상의 관념들을 쉽게 알려준다. 러시아 문학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애쓴 모습이 역력하다. 한국이나 미국 유럽과도 비교하면서 쓴 부분에서 작가는 한국에 살고 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다 읽고 생각해 본다. 중고등학생들에게 언어영역 점수를 위한 문학 읽기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학생들이 <러시아의 문장들>을 읽고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는다면 어렵지 않을 거란 생각도 해본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보는 관점도 작가마다 다르다는 러시아. 참 다채롭고 모순적이고 역설적이란 작가의 말이 러시아를 더 알고 싶게 한다. 러시아 문학을 다시 읽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